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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년고찰 나한 청정기도도량
글쓴이 석굴암 등록일 2009-04-15
첨부파일 조회수 992

 

천년고찰 나한 청정기도도량

 

‘수구성취다라니경’ 독송  오봉산 석굴암

                                                                      [2008년 05월 07일 13:20 수요일]

 

 

 

이 진언을 너에게 권하노니, 진언의 위신력은 능히 일체중생을 고해(苦海)에서 건질 수 있느니라.

멸악취야,

너는 마땅히 지니고 외우고 관하고, 행하고 수호하여 없어지지 않게 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잠깐만이라도 이 진언을 들으면,

천겁동안 쌓아 모인 악업의 무거운 장애 때문에 응당 갖가지로 유전하면서 생사하는 온갖 미물 등으로 태어나야 할 것이로되,

영원히 그러한 몸을 받지 않느니라.

뿐만 아니라 즉시에서 모든 부처님의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로 바뀌어 태어나거나, 같은 모임에 태어나거나, 가장 수승한 가문에 태어나느니라.

 

멸악취야,

이 사람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귀한 곳에 태어나게 된 것은, 모두가 이 진언 때문이니, 태어나는 곳곳마다 모두 청정하고 물러남이 없는 법을 얻느니라.

심지어는 보리도량의 가장 수승한 곳에 이르는 일까지도 모두가 이 진언을 찬미했기 때문이니, 이 진언의 공덕이 이러하니라.

이런 까닭에 수구즉득진언이라 하느니라.


누구나 한번쯤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디론가 무작정 가고 싶다면 그곳은 모르긴 해도 이래야 할 것이다.

숲이 우거져 있어 눈이 즐겁고, 맑은 공기로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지고, 모든 근심과 걱정이 바람에 날아 가버리는 곳.

 

발을 내딛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곳.

언제 가도 환하게 우리를 반겨주는 그곳, 바로 자연이다.

그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산사라면 아마도 우리 불자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만큼 더없이 고마운 곳일 것이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산세가 깊어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한 북한산 자락 양주 오봉산 천연바위 관음봉에 위치한 석굴암.

그곳이 바로 그 고마운 산사 중 하나다.

  

오봉(五峰)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觀音峰) 중턱에 자리 잡은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을 띄고 있다.

 

수많은 아름다운 산사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석굴암은 자연이 만든 부처님이 곳곳에서 불자들을 반겨주어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한존자가 가사를 두르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모습의 관음봉 마애불, 경전을 읽고 있는 듯한 부처님 모습 등은 언제 가서 봐도 항상 그대로이다.

 

큰 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 떠받치듯 오묘하고 아름다워, 고요한 자태를 뽐내는 석굴암은 과연 최고의 기도 성지이기에 돌아서면 다시 가고픈 마음의 고향 같은 사찰이다.

 

도봉산은 주봉인 자운봉(紫雲峰)에서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과 선인봉(仙人峰)이 있고,

서쪽으로 오봉산 석굴암(五峰山 石窟庵)이 있으며,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을 접하고 있다.

 

도봉(道峰)은 풍수지리상으로 왕관(王冠)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서쪽의 오봉(五峰)은 주봉을 호위하는 장군기마상(將軍騎馬像)이라 할 수 있다.

그곳 한 가운데 위치한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께서 3년간 수행정진 했던 곳이다.

 

그러나 1950년 6·25사변으로 석굴암의 법당과 전각은 모두 소실돼 버렸다.

전쟁의 여파로 당시 석굴암은 참담한 모습이었다.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음 암자를 남겨두고 모두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주변에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 나한님과 수구다라니 목판 등 국보급 유물들이 나뒹굴며 파손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창건주인 故초안 스님의 길고 긴 원력불사가 시작됐다.

그때가 1954년이었다.

 

또 절 부지가 타의 소유로 되어 있었기에 불사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어려움을 딛고 끊임없이 불사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현재 석굴암 주지 도일 스님의 은사인 故초안 스님은 불사 초기 당시 법당에서 발견한 수구다라니 목판에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6·25 전쟁 당시 화재로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이 다라니경은 불사 중이라 20여 년간 다른 사찰에서 보관하고 있던 것을 찾아와 최근 도일 스님이 은사 스님의 원력을 받들어 다라니의 위신력을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다라니를 최근 동국역경원 월운 스님이 직접 우리말로 옮기고 중앙승가대 교수 종석 스님이 음역해 풀어내 고증을 거쳤다.

이 다라니경은 신수대장경(新修大欌經)에 포함된 경전으로, 단종 원년(1453년)에 양주 석굴암에서 개판(開版)돼 보존된 조선 초기 목판 다라니경이다.

 

‘수구성취다라니’는 『불설금강정유가 최승비밀 성불수구즉득 신변가지 성취다라니경』의 줄임말로 경의 제목 첫머리에 붙은 금강정(金剛頂)은 이 경이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두 맥으로 나누어지는 중기 밀교 가운데 금강정경의 맥을 이어 받아 만들어진 밀교경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경의 내용은 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수구즉득진언(隨求卽得眞言)이 갖는 공덕에 대한 찬탄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공덕이 있는지 등을 설하며,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는 자유자재의 다라니경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오봉산 석굴암에서만 유일하게 주력수행으로 삼고 있는 이 다라니경은 돌아가신 초암 스님의 유일한 제자인 도일 스님이 주지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수구성취다라니’ 사경과 기도를 시작했다.

 

1998년부터 산문 밖을 일체삼가는 제1차 1000일 기도를 시작해 회향과 입재를 반복하며 현재는 3차를 진행 중이다.

 

‘수구성취다라니경’을 널리 알리기 위한 3번째 1000일 기도 중에 있는 주지 스님은 지난 2007년 7월 29일 입재 이후 2010년 4월 24일 회향 날까지 3년 동안 일체 산문 밖 출입을 하지 않겠다는 원을 세우고 수행 정진 중이다.

 

또 스님은 최근 『수구성취다라니경』을 독송하여 CD로도 제작했으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다라니경’을 알리기 위해 매월 셋째 토요일 다라니 독송 철야정진으로 많은 불자들의 수행 원력을 독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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