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부처님의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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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시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석가모니라는 명칭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聖者)’라는 의미이며, |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
본래 부처님의 성은 고타마이며 이름은 싯달타였는데 |
진리를 깨달은 이후부터 부처님(Buddha)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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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소리를 따서 ‘불타(佛陀)’로 적거나 |
혹은 뜻을 옮겨서 ‘각자(覺者)’라고 합니다만 |
한국에서는 ‘부처님’이라고 부릅니다. |
이 밖에도 부처님은 여러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데, |
전통적으로는 여래십호(如來十號)라 하여 10가지의 이름이 있습니다. |
부처님께서는 B.C. 624에 탄생하셔서 544년에 열반하셨습니다. |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불기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해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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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석가족이 세운 카필라 왕국의 정반왕(淨飯王)과 |
마야(摩耶) 왕비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
카필라 왕국은 지금의 인도 북부 네팔 땅에 위치한 작은 왕국으로 |
벼농사를 주된 산업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습니다. |
마야왕비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출산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던 도중, |
룸비니 동산에서 싯달타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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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왕비는 아기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
싯달타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
비록 일찍 어머니를 잃은 싯달타였지만 왕자로서 모자람 없는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
그러나 태자 싯달타는 날이 갈수록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생각보다는 |
인생의 근본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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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인 정반왕은 태자 싯달타의 번민을 알고 |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삼시전(三時殿)이란 세 개의 궁전을 지어 |
철마다 옮겨다니면서 호화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하였습니다. |
그러나 왕궁의 호화로운 생활도 싯달타 태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 했습니다. |
‘사람은 왜 늙어야 하며, 또 병들고 아파야 하며, 결국은 죽어야 하는 것인가? |
또한 현실은 너무나도 괴로움이 많지 않은가. |
그렇다면 이러한 괴로움은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세상의 많은 가르침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가르침만이 옳다고 하는데 |
과연 어떤 가르침이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고, |
이에 대한 사색과 번민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
19세에는 같은 석가족의 콜리성주의 야쇼다라공주와 결혼하였고, 아들 라훌라가 태어납니다만, |
싯달타 태자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를 벗어나 해탈을 이룰 것인가 |
하는 문제로 늘 가득 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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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싯달타 태자는 출가를 결행하니 그의 나이 29세였을 때입니다. |
출가를 한 싯달타는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
당시 가장 훌륭하다고 소문난 두 명의 수행자로부터 |
선정(禪定)에 이르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
즉 정신통일을 하여 고요한 경지에 도달하여 해탈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나 선정(禪定)도 깨어나면 전과 똑같은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
괴로움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
끊임없이 정신통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으며 |
결국 정신작용의 완전한 정지는 죽음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
싯달타는 두 스승을 떠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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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수행자들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안 싯달타는 |
혼자의 힘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그리하여 가야의 네란자라 강가 숲 속에 자리 잡고 |
정신적인 자유를 얻기 위한 고행을 극심하게 하였습니다. |
이러한 극단적인 육체적 고행으로 싯달타의 몸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을 뿐 |
깨달음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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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는 네란자라 강에서 몸을 씻고 고행을 그만두었습니다. |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수자타라는 소녀로부터 |
우유로 발효시킨 죽을 받아 마시고 기운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
건강해진 몸과 상쾌한 정신으로 싯달타는 |
보리수 그늘 아래에 앉아 참선수행에 몰입하였습니다. |
며칠이 지난 새벽에 그는 드디어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
왕궁을 떠나 출가하여 수행의 길을 걸은 지 6년만이었고 그의 나이는 35세 때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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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사람 부처님이 된 것입니다. |
그의 깨달음의 주요 내용은 |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있는 것이며, |
모든 것은 그 어느 것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
것이었습니다. |
그러므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은 신이나 운명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
모두 스스로가 지은 원인에 의해서 받는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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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
부처님은 부다가야의 보리수를 떠나 처음으로 향한 곳은 바라나시의 녹야원이었습니다. |
그곳에서 부처님은 최초로 다섯 수행자들에게 수행의 바른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
그는 수행자는 지나친 향락에 빠져서는 안 되며, |
그렇다고 극단적인 고행을 하는 것도 옳지 않으므로 |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가라고 가르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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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가르쳐 |
다섯 수행자들을 깨우치게 했습니다. |
그들은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
이후 왕사성(王舍城)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퍼져나가 |
수많은 제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국왕과 대신, 부호, 평민, 천민 할 것 없이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
부처님의 가르침에 큰 감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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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육체의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평등한 것입니다. |
온 생애를 오로지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데에 바치신 부처님께서도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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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라.” |
라는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대지를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황혼처럼 |
부처님은 80세의 위대한 생애를 마치십니다. |
35세에 깨달음 얻은 후, 녹야원에서의 첫 설법을 시작으로 하여, |
쿠시나가라에서 80세에 열반에 들기까지 |
부처님은 45년 간 쉬지 않고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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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길에서 태어나시어, 길에서 고뇌를 하시고, 길에서 수행하며, |
길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길에서 사람의 갈 길을 가르치시고, |
제자들과 함께 길에서 주무시며, 길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
글자 그대로 부처님은 바로 길에서 길을 인도하신 도사(導師)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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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
구도(求道)와 성도(成道) 그리고 교화(敎化)와 입멸(入滅)의 길을 걸으신 부처님의 생애는 |
참으로 위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
부처님은 정신적인 깊이와 도덕적 위대성을 지니시고, |
지혜와 자비를 갖추신 분으로서 인류에게 인간의 위대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
부처님을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