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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지스님과의 대화
글쓴이 석굴암 등록일 2020-11-15
첨부파일 조회수 394

오봉산석굴암 방문기

<신문에 게재하고자 하는 글>

초안스님은 승려생활을 하다가 19506.25전쟁에 육탄용사로 참전한 국군이다. 전쟁 전에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전쟁이 발발하자 하사로 입대하여 육탄용사가 되면서 상사로 승진했다. 민첩하고 달리기에 능한 실력으로 5사단의 旗手(기수)가 되었다. 태극기를 가슴에 간직하고 적의 탱크를 수류탄으로 무찔렀다.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었고 육군병원에서 전역했다.

1954년에 오봉산 석굴암으로 들어와 승려생활을 이어갔다. 폐허가 된 석굴암에 움막을 차리고 석굴암의 중건에 일생을 바쳤다. 총상으로 인해 자주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보훈신청을 하지 않아 자비로 진료비를 냈다. 오봉산에서 6.25전쟁중 전사한 군인들의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초안스님 혼자서 해냈다.

초안스님의 11번째 제자이고 현재의 석굴암 주지인 도일스님이 보훈처에 보훈등록을 신청했다. 직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조차 못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승적부에는 도일스님이 초안스님의 수제자로 등재되어 있다. 중생에게는 호적이 있다면 스님에게는 승적부가 있다. 우리의 행정은 승적부를 행정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소극행정으로 일관하는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남은바램은 현충원에 모셔지는 일이다. 1998년에 돌아가신 초안스님의 사리59과와 유골을 석굴암측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쟁에 참전하여 국가를 위해 몸 바치고 전사자를 수습하고 중생을 이끄는데 평생을 바친 초안스님의 유골이 국가적 예우를 갖춰서 모셔지기를 바란다.

석굴암 스님들은 수도권 최초의 寂滅寶宮(적멸보궁)을 준비중이고 노인복지공동체시설, 청소년 다문화 창달사업을 진행 중이다. 삼각형의 균형잡힌 자연석에 마애약사여래불을 부조했다. 쉽지 않은 행정절차를 진행하여 종교부지를 확보했다. 그런데 사찰 진입로로 함께 쓰이는 도로가 예약제로 통제를 받고 있다. 1968년 김신조 등 무장간첩 침투의 여파다. 신도들이 왔다가 방문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서울 복판 청와대 뒷산도 개방하는 상황인데 예약을 해야 출입문이 열린다면 이 또한 지나친 규제다. 전남양주시부시장 이강석

 

2020. 11. 14 오봉산석굴암 방문기

오봉산 석굴암을 창건하신 초안스님은 19506.25당시에 육탄용사로 참전한 국군이십니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셨는데 전쟁이 발발하여 다시 하사로 입대하였고 육탄용사가 되시면서 상사가 되었습니다. 민첩하고 달리기에 능한 실력으로 5사단의 旗手(기수)가 되었습니다. 태극기를 돌돌 말아 품에 간직하고 적의 탱크를 수류탄으로 무찌르면 아군에게 깃발을 흔들어 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 중에 적에게 포위되어 사단의 기를 빼앗겼습니다. 지금도 그 치욕을 와신상담하는 마음으로 5사단은 사단 깃발이 없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빼앗긴 깃발을 찾아와야 한다는 각오라고 들었습니다. 초안스님은 두 번의 입대를 통해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냈고 부상을 입었고 육군병원에서 전역하였습니다. 제대증을 육군병원장이 발급하였습니다.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국군병원장의 제대증을 받고 어머니와 함게 이곳 오봉산석굴암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폐허가 된 석굴암에 움막을 차리고 수도 생활과 석굴암의 중건에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6.25전쟁의 총상으로 자주 병원을 다니시면서도 보훈신청을 하지 않으셨으므로 자비로 진료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에 제자 도일스님이 보훈처에 등록서류를 제출하였지만 직계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승적부에는 도일스님이 초안스님의 수계자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중생에게는 호적이 있다면 스님에게는 승적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정은 승적부를 행정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말로 적극행정을 하는 공무원이라면 스님은 가족이 없으니 행정제도상으로 직계가족이라는 용어에 승적부의 제자를 가족의 개념에 넣어야 할 것인데 소극행정으로 일관하는 것 같습니다.

1954년에 이곳 오봉산자락에 오신 초안스님은 석굴암 재건에 평생을 바치십니다. 초안스님은 어려운 수도생활중에도 수년동안 6.25전쟁중 전사한 군인들의 시신을 매장하거나 화장하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하셨습니다. 한번은 얼굴이 퉁퉁 부어서 오셨으므로 그 연유를 물으니 땅을 타다가 땅벌집을 건드려서 얼굴 여러 곳을 벌에 쏘이셨다고 합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초안스님 혼자서 해내신 것 입니다.

[양주오봉산석굴암 홈페이지] 석굴암 창건에 대해선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께서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께서 3년간 수행정진 하셨다고 한다. 초안스님의 은사이신 동암선사께서는 조국광복을 위해 끊임없이 상해 김구선생의 임시정부를 도와 광복 운동을 하시면서 틈틈이 석굴암에 오셔서 수행정진 하셨고, 조국은 해방이 되었지만 19506·25사변으로 인하여 석굴암의 전각이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창건주 초안스님의 세수 28195465일 석굴암에 오셨을 때에는 대지 한평도 없었고, 법당은 완전 전소되고,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석굴안에는 전화로 인해 아미타불, 지장보살, 나한님과 수구다라니 목판만 남아 나뒹굴고 파손되어 있었다.

초안스님께서 모두 소중히 수습하는 동시에, 모친 조 삼매심 보살님, 화주 윤 일광심보살님과 함께 폐허가 된 경내지에 임시로 움막을 짓고 주변에 널려 있던 수많은 전사자들의 시신을 화장 또는 안장해 주셨다. 그리고 석굴암의 중창복원 불사를 일심으로 발원하는 천일기도에 들어가셨다. 이로써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초안스님과 두 분 보살님의 뼈를 깎는 헌신과 간절한 기도 원력 덕분으로 차근차근 불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폐허위에 맨손으로 오직 중창불사에 대한 일념만 갖고 지극정성으로 천일기도에 들어가니, 기도에 동참했던 신도들의 입에서 입으로 석굴암의 수승한 기도영험이 널리 알려지면서 복원불사에 동참하려는 새 신도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쌀 한말, 기와 한장도 일일이 십리 길을 걸어서 이고 지고 날라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 분의 원력과 신도님들의 지극정성으로 불사는 하나 둘씩 이루어져 나갔다. 그리하여 1954년부터 시작된 복원불사는 대지조성 152, 축대, 석굴확장, 요사채 복원, 삼성각 신축, 대웅전 신축,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상 신 조성, 범종(500) 및 범종각 낙성, 쌍사자 석등, 전기시설, 삼성각 신축, 봉향각 신축, 진입로 확장보수 불사 등의 차례로 이루어져 현재와 같이 손색이 없는 가람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여러 스님들이 초안스님의 제자가 되어 석굴암에서 수도를 해 왔고 지금 11번째 제자인 도일스님이 주지스님으로 양주오봉산석굴암을 이끌고 있습니다. 석굴암은 구리에서 수도권제1순환도로를 양주방면으로 달리면 좌측에 보이는 거대한 회색 바위 너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파른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양주오봉산석굴암 홈페이지] 수도 서울에 위치한 북한산과 도봉산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아름다운 국립공원으로 이름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산세가 가장 뛰어난 도봉산의 서쪽 다섯 봉우리가 그 위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오봉(五峰)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觀音峰) 중턱에 자리잡은 석굴암은, 위로는 도봉이 치닫고 아래로는 삼각산이 모여서 마치 여러 별이 모여 북극성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아 그 산세가 크고 뛰어나며, 물 또한 맑고 골이 깊어 수행하는 사람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사찰입니다.

도봉산은 주봉인 자운봉(紫雲峰)에서 남쪽으로 만장봉(萬丈峰). 선인봉(仙人峰)이 있고, 서쪽으로 오봉산 석굴암(五峰山 石窟庵)이 있으며,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을 접하고 있습니다. 도봉(道峰)은 풍수지리상으로 왕관(王冠)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 서쪽의 오봉(五峰)은 주봉을 호위하는 장군기마상(將軍騎馬像)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봉산 석굴암의 현 주지이신 오봉도일스님은 1954년 초안큰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원불사를 지극정성으로 이루어 나가 현 가람의 모습을 만들어 내셨고 대지 2만평 매입하셨으며 나머지 55천평도 매입 추진중에 있습니다.

또한 요사체 겸 수련장을 85평 건축과 5백평 대지조성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석굴법당 보수불사, 동암 대선사 사리탑과 초안큰스님의 사리탑 조성, 경내 조경 정비와 초안장학재단 설립 등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인연있는 모든 불자님들께서 불사에 많은동참 하여주기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주지이신 도일스님과 함께 마애약사여래불 앞에 도착했습니다. 자연석이 피라미드 형상으로 자리하였고 앞면에 마애약사여래불을 부조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안테나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 정상의 큰 바위와 이곳 오봉산석굴암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지스님의 1시간 말씀을 받아 적으면서 오늘의 석굴암이 이처럼 웅장하게 자리잡기까지 스님과 보살님, 신도들의 노력이 아주 크고 웅장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진입로를 관리하고 있어서 사전에 예약을 해야 입산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석굴암을 방문하고자 오신 신도들이 발길을 돌리게 됩니다. 군부대는 떠나갔는데 훈련장은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19681.21사태때 김신조와 그 일행이 지나간 산줄기여서 수십년간 입산 통제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청와대 뒷산도 일반에 개방되고 있는데 이곳에 대해 입산을 통제하는 것은 소극행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산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동시에 시민들이 편안하게 등산을 즐기도록 개방하고 신도들이 사찰에서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석굴암의 주지스님이신 도일스님은 스승이신 초안스님 이름만 생각해도 목이 메이십니다. 1998년 입적하신 초안스님 49재를 올리고 100일이 되는 날에 1,000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간 시묘살이를 하듯이 스승이신 초안스님을 위해 1,000일간 기도를 올렸습니다. 도일스님은 초안스님을 회고하면서 행복해 하십니다. 밖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늦게 돌아오면 크게 역정을 내셨습니다. 반가워하시면서도 왜 늦었는가 화를 내셨다고 회고하십니다. 도일스님 35세때 초안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부처님의 말씀, 경전의 말씀을 넣어서 전파하고자 합니다. 남을 속상하게 하면 내가 더 힘이 드는 법입니다. 나을 배려하는 덕으로서 귀감되게 하는 노력이 수도의 길입니다.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 집니다. 대화속에 좋은 말씀을 편집해서 오늘의 편지라든가, 행복을 찾아서 등 좋은 제목을 붙여서 편지를 만들고 이를 유투브에 올려도 좋겠습니다. 요즘 자살사이트를 보면 걱정이 큽니다. 동반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같은 안타까운 사고를 예방하는데도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제 100세시대인데 정년 이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불법에 어떤 방법으로 일조할 것인가. 일반사회의 봉사는 한계가 있습니다만 불교봉사는 차원이 다른 것이니 그 차이가 1,000배가 넘을 것입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지만 양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가난, 불구를 겪고 비난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전생에 복을 주었기에 모든이가 나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전생에 씨앗을 뿌렸기 때문입니다. 석굴암이 큰 뜻을 이루고자 하고 거기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노인을 위한 공동체 터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땅은 139,000평이 있으나 재원이 부족합니다.

이제 도일스님은 이 석굴암을 후손에게 문화유산으로 남기고자 하십니다. 북한산, 도봉산, 우이령 속에 석굴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주 석굴암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구조이고 양주 석굴암은 자연석굴입니다. 앞으로 이곳 양주 석굴암을 경주 석굴암처럼 조성하고자 합니다. 이곳에 시주를 하시는 신도들의 이름을 새기면 그 부도전은 영원합니다. 양주 석굴암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상좌로 이어가기에 영원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에 오시는 신도들이 큰 역할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도들도 후원회에 가입해서 발전위원회를 만들고 관심을 갖고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역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시민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석굴암의 사회봉사의 길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깊은 인연으로 만난 도일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석굴암을 소개해 주신 홍석준 이사님께 감사드립니다.

2020. 11. 14 <이강석 올림> 말씀을 듣고 적은 것이니 틀림이 있을 수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침 108배를 올리면서
보훈기관의 소극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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